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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명의전화 운동은
이영민 목사의 사회봉사에 대한 열정과 집념에 의해 시작되었다.
 

1969년 가을 이영민 목사는 스위스 '봇세이 연구원'에서 개최한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 중 크리스마스를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때 H.가이슬러 목사의 안내로 '텔레폰실졸게'(Telefonseelsorge)라는 전화상담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이영민 목사는 사회봉사를 위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교회의 특수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영민 목사는 귀국 길 영국 런던에서 '사마리탄 (Samaritans)' 전화상담 단체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활동 상황을 둘러보고 자신의 특수 목회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 4월 봇세이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영민 목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의
사회활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많은 격려를 받았고 이에 그 구체적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 첫 단계로, 조향록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아가페의 집' 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1971년
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추천을 받아 세계교회협회의(WCC)에'아가페의 집' 사업 보조 신청서를 보내 3만 5천불의 원조를 받게 되었다. 이사회에서는 전화상담 을 위해 한국기독교회관에 장소를마련하는 한편 서울 무교동에 다방을 운영하기로 하고 우선 1973년 6월 1일 '아가페의집' 커피하우스를 개점하게 되었다.

그래서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대화의 장소를 제공하여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고
서로의 만남을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가페의 집'은 서울시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생명의전화 운동을 태동시킨 채 12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준비 작업은 '아가페의 집' 사업과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가시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적인 봉사로 '서울생명의전화'는 1976년 9월 1일 정오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표어를 걸고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역사적인 개통식을 가졌으며,
이것이 '한국생명의전화'의 모체가 되었다.

생명의전화는 개원 후 우리나라 전화상담기관의 효시로서 본격적인 자원봉사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 전범으로 자리 잡아갔다.

 

생명의전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와 갈등, 자살기도 등의 복잡한 삶의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명의전화는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도구가 되어왔다.
특히 생명의전화 자원봉사 상담원들의 봉사활동은 크리스찬으로서 예수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특수성을 갖고 있지만, 포괄적 사역으로서 교회연합운동의 모범을 보이며,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