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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가 너무 혐오스러워요.
작성자 : 안녕
작성일 : 2017-09-22 오후 11:40:55
상담분류 : 기타상담 조회 : 171
안녕하세요 올해 고3이고 내일 실기시험을 치러가는 미대입시생이에요. 저는 자기혐오가 매우 심해요. 오늘도 실기시험 준비물을 챙기는데 제 그림실력을 보면 크게 기대도 되지 않고 별로 긴장도 되지 않아요. 그냥 옆에서 넌 해봤자 안되는 실력이니 포기하라고, 이런 생각만 저도 모르게 계속 맴돌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얘들처럼 시험 날짜도 알아보고 준비물도 꼼꼼히 체크하면서 준비하고 해야하는데 전 이상하게 그럴 의욕이 없어요. 제가 열심히 준비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혐오감이 들고 짜증만 나요. 그리고 누가 옆에서 계속 얘기해요. 넌 이런거 해봤자 안된다고.
제가 중간에 미술 하다가 크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래서 학원만 오면 예민하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고 그래서 그림도 안 그려져서 진정될때까지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학원오는 식이에요, 항상. 오늘은 특히 심해서 이렇게 글을 써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덜렁되고 공부도 못하고 뭐 하나 잘 하는 것도 없었어요. 성격도 그렇게 당차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부모님한테 무시받거나 그런 적이 좀 많았어요. 누가 절 무시하거나 그런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인정하고 있더라구요. 전 나약하고 아는 것도 없는 병신이니까요. 전 남들과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깐 겉모습이라도 똑같아야 해요. 이제 학원만 봐도 답답하고 내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오고 속이 타들어가도 저는 열심히하고 기대하는 척하면서 살아야겠죠. 언제쯤 저는 남에게 기대는 사람이 아닌 남이 기대는 사람이 될까요. 제가 너무 혐오스러워요.
IP : 182.209.68.87
답변내용 :
‘안녕’ 이라고 한 님.
고3...
듣기만 해도 부담이 되는 단어입니다.
고3 자신은 물론 학부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실기시험은 어떻게 치르셨는지...

님.
큰일을 앞에 두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다 다릅니다.
누구는 의욕을 더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또 누구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두 반응이 다를 뿐 어느 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지나친 소극적 반응, 도망치는 반응이 지속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마음으로 생긴 어려움은 마음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님.
학원에서의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고
매사 자신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존중받은 기억이 없고,
그러다보니 자신을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하셨네요.

님의 글을 읽다보니 제 청소년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도 자존감이 낮아 제 얼굴 보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거울을 안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신앙으로 회복했습니다만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열심히 했으면 스스로 칭찬해주세요.
못했다고 생각되면 다음에 더 잘하자고 격려하면 됩니다.
작은 칭찬이라도 자주 들으면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트라우마를 단어를
덜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트라우마가 맞을지라도
어떤 기억을 딱 ‘트라우마로‘로 정의해놓으면
그게 내 인생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남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남의 생각, 남의 판단을 정중하게 거절하되
거절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님.
누가 뭐라고 해도 님은 사랑받기 태어난 사람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삶은 무조건 견뎌야하고,
참아 넘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나 스스로 펼쳐보여야 하는 그 무엇입니다.

아픈 내 안으로 자꾸 숨어들어가지 말고
시선을 들어 밖으로 향하도록 해보세요.

공부에 실기까지 한시가 아깝겠지만
내 몸의 건강에도 신경써주세요.
이것도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햇살 좋은 가을입니다.
어제와 다른 님이 되길 소망합니다.

상담원 ‘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