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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삼수생 작성일2025-03-10 조회407
안녕하세요, 21살 세 번째 수능 준비를 하고 있는 삼수생입니다.
저는 겁이 많고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항상 모든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감사할 점도 많지만 조금은 특이한 가정에서 남들에게 말하기도 애매한 괴로움들 속에 파묻혀 오로지 혼자 생각만을 반복해오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대략 6년 정도를요.
그만큼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고(아마 보통 사람들은 본능으로 처음부터 당연히 알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냥 이것저것 스스로 답을 내놓은 것 같아서 이젠 더 생각할 것도 없다고 느껴져요.
더 이상 예전처럼 괴롭거나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이 어색하고 어렵다 못해 낯설기 그지없는 것도 여전하지만 부딪혀보려면 일단은 수능이 끝난 8달 후의 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단지 지극히 사소한 문제가 남았는데 짧다면 정말 짧은 시간인 남은 8달을 버티는 것이 당장 요즘부터 너무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종일 독하게 공부하기만 해도 부족한 상황인데 지금 새벽에 이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만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롯이 홀로 우울하게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보니 기본적으로 마음이 관성처럼 고립되어 있고 우울합니다.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도움 안 되는 생각들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종이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이 공부 반 생각 반일 만큼 속이 어지럽고 일상적으로 겪는 별것 아닌 자극에도 하나하나 트라우마처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꾹 눌러두고 독한 마음으로 공부할 만큼 강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는데 해소할 곳이 전혀 없어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 이따금 듭니다. 부모님은 착한 분들이시고 삼수도 전적으로 지원해주시는 정말 배부르고 복 받은 상황이지만 솔직히 대화할 때마다 말을 주고받는다기보다는 그들을 이해하고 참고 견디고 제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소모하게 되는 분들이라 집에 오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은근히 타격이 쌓입니다. 부모님 말고도 정말 이상하게 잘못 커서 사람 괴롭게 하는 형제도 한 명 같이 살고 있고요. 그래도 가깝게 연락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힘들 때는 친구에게 제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요. 비단 요즘만 그런게 아니라 늘 지금까지 원래 저부터가 마음의 교류같은걸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못 배운 인간이라 늘 고립되어 살아왔고 그러니 차라리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밤에 잠을 안 잡니다. 반드시 일찍 자겠다고 다짐해놓고도 집에 오면 어느 순간 끈이 탁 풀려서 유튜브를 보면서 멍하니 제 마음으로부터 도피해요. 그래도 잠을 자놓으면 그냥 멍하게 그럭저럭 공부할 수 있거든요. 잠을 안 자니까 건강도 안 좋아지고 안 그래도 우울한 정신이 자괴감과 함께 정말이지 밑도끝도없이 괴로워져요.

특히 요즘은 이렇게까지 하는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기분을 지배해서 힘듭니다. 저 자신은 내적으로 애매하게 학벌 강박에서 3분의 1쯤 탈피한 상태인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보통 자기 자신의 간절함이 극에 달아야 될까 말까라던데 작년에 부모님 몰래 반수했을 때는 외로웠지만 목표는 확고했는데 올해는 솔직히 간절함보다는 회의감과 막막함이 큽니다. 이런 상태로 삼수를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근데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

제 애매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누군가의 반응이라도 받아본다는 것이 저한테는 늘 두려우면서도 갈망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자세히 적지는 못했지만 왜 내 이야기는 이토록 이해받기 힘든 이상한 이야기인가 하는 억울함 혹은 답답함 같은 것도 많이 느껴왔습니다. 제 괴로움이 마치 그 존재 자체가 이상한 유령같다고 느낀 적이 많거든요. 제가 유별나서 별다를 것 없는 인생에 과민반응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그저 제 나약함에 대해 누군가에게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우연히 여기 들어와서 앞서 적혀있던 많은 상담과 답변들을 읽다보니 너무 전문적이고 진심어리게 답변을 남겨주셔서 읽다가 저까지 위로를 받고 어쩌다 보니 제 이야기까지 쓰고 있네요. 상담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일부턴 일찍 잘..거라고 저도 저의 다짐을 지키고 싶은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건지ㅎㅎ;; 하여튼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답변내용
삼수생...
어렵고도 막막한 단어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여기에 사연을 보내신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네요.
조리가 없고 맥락이 없는 글이라고 하셨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글이 현재 님의 복잡한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지난 6년간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고등학교 진학하고부터네요.
공부하느라 힘든 가운데서도 자신을 찾는 어려운 방황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픔이라면 무척이나 아팠을 세월.
꿋꿋하게 버텨왔고, 오늘도 새벽까지 번민의 시간을 보내는 님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 ‘삼수생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노자>에 나오는 말처럼, 겨울에 내를 건너듯 조심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더러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도 어렵고 막막한 강을 건넜을 겁니다.

님,
우리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꼭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삼수생, 오수생일지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유익도 없고 헛된 생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그 시간들은 귀중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6년간 ‘생각만’ 했다고 아쉬워할 일이 아닙니다.
비록 그 시간들이 대학 가는 일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님의 인생에서는 귀한 자산임에 틀림이 없으며
언젠가는 귀중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 일은 히스토리며, 내일 일은 미스테리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며 100세 장수한 평범한 외국 농부의 말입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알차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듯이
대학 진학은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밤하늘의 별을 봅니다.
눈에 보이는 별만 있는 게 아니라
지평선 너머에 더 많은 별이 있음을 잊지 맙시다.
마음을 열면 그 별들이 모두 가슴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 또한 기억합시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간절기입니다.
님은 지금 인생의 간절기에 서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며, 엄혹한 현실 또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 격려한다면,
인생의 간절기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님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상담원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