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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신체)건강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작성자. 작성일2021-01-16 조회254
말 그대로에요.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27살에 해외 대학 졸업하고 1년간 봉사활동과 영어강사 알바로 조금씩 일하다 1년 구직 후에 직장을 잡았어요.
직장이 너무 안맞고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공부했었나 싶고 내 현실이랑 내가 꿈꿨던 이상의 괴리가 심해서 미쳐버릴 거 같았어요.

회사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거의 매일 화장실 가서 울고 집에 와서도 한시간 정도 오열하면서 매일 버텼던 거 같아요.
주변에서도 너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고 괜찮냐고 그러더라구요. 안괜찮아서 괜찮다는 대답을 못했어요.
엄마 빼고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못하고 아 그냥 인생 좃같다. 이렇게는 못살겠다. 정말 못버티겠다, 싶더라구요.

회사가 나빴냐 하면 아뇨 그냥. 여느 블랙기업이랑 비슷했어요. 사람들은 일에 치여서 하나같이 지쳐있고 의욕없고.
네임벨류는 외국계대기업이었지만 속은 전형적인 한국기업이고 외국계 특유의 단점과 한국 기업의 단점을 잘 섞어놓은 곳이었죠.
회사 사람들이 못해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못버티겠더라구요.

이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는 내가 너무 쓰레기같았고, 이미 실패한 거 같았어요. 다들 그냥저냥 만족하던데 나는 그게 안되더라구요.
나의 발전은 끝났고 이대로 죽어버릴 일만 남은거 같은 느낌이요. 난 여기서 끝인 거 같은 느낌. 나의 가치가 없는 느낌.

결국 그만뒀어요. 맨날 하루가 멀다하고 울고 폭식하고, 나는 이거밖에 안된다는 자괴감이랑 일도 재미없고 사람도 싫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내 자신이 끔찍했고 일요일 오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내 감정과 그게 결국엔 오열로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작년 2월에 그만뒀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2020년은 어영부영 어느 것도 하지 않고 보내게 됐네요.
아르바이트라도 구해보려고 했는데 제 나이는 이미 너무 늙었고 알바를 구하는 곳에선 제 경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21년이 됐고 저는 서른이 되었구요. 지금까지 해야겠다고 한 것들이 전부 미끄러져서 제가 뭘 해도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정신 상담은 작년 중순부터 받고 있는데 나는 가치가 있다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도 잘 모르겠어요. 이제 그냥 다 그만하고 싶어요.

엄마는 늦지 않았다고 해요. 서른이면 지금 너무 젊다고, 전부 다 할 수 있다고. 돈도 지원도 다 해줄테니 하고싶은거 하라고.
그 말을 듣고 뭔가 하고 싶은데 못하겠어요. 난 못할 거 같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도 다 엉망이 되었는데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서른이 되도록 이지경인 제가 너무 한심해요. 그냥 없었으면, 애초부터 내가 없었으면 내 가족들도 이런 맘고생도 안할텐데 나때문에 괜한 맘고생을 하는 거 같아요.

19년도에 정말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이번년도만 지나면 이 고통이 언젠가 나를 키워내서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더 단단해지고 나 스스로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그 생각을 하면서 버텼었어요. 20년이 됐는데도 나아지는게 없더라구요. 21년이 됐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진로도 정하지 못해서 백수새끼죠. 내 인생은 고등학교때 인문계열을 택한 것부터가 잘못된 거 같단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정말 모르겠어요. 나는 왜 살까 고민도 엄청 했었는데 이젠 생각하기도 지치고 힘들어요. 옛날엔 그렇게 좋아하던 책들도 이야기들도 이젠 글자 자체가 읽히지가 않아요. 말도 잘 안나오더라구요.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요. 앞으로 그냥 어떻게 살아도 재밌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인생은 재미로 사는 게 아니라지만 살아가는 데에 재미가 없으면 사는 의미가 있을까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아니지만 역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그저 존재할 뿐이지 살아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이미 저는 죽어버린 거 같아요. 육체만 벗어나면 끝일 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에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저한테 그닥 위안이 될 말이 올라올 리가 없는데도 말이죠.

답변내용 사는 것이 재미없다고 호소하는 님께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기업에 근무하게 되어
남보기에는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님이지만
내면적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힘들어
오죽하면 그만 두셨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서,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모든 게 시들하고 의미없게 느껴지시는군요.
모두들 아직 젊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얼 하면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불안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님이 느끼는 불안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님을 휩싸고 돌아서 어떤 일이든지 손에 잡히지 않으며
재미없고 의미없이 여져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런 문제와 만나면서
적극적으로 상담도 받아보시고 있으시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담은 님이 걸어갈 길을 제시하거나 보여주는 작업은 아닙니다.
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그림자와 만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법과 자세를 알게 해주는 일입니다.
참 잘하시고 있으신 겁니다.
다만, 상담을 통해 우선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기초작업이라고 생각하시고
자신을 다독거려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황이 바뀐다기보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바뀌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삶은 어떠한 삶이든지 재미가 넘치고 의미가 넘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객관적인 시공간의 상황인데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어떤 순간은 의미있고 어떤 순간은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겠지요.
님은 다른 사람보다 여리고 예민한 기질이 있는 한편,
진지하고 성실하여 언제나 열심히 언제나 의미있게 지내야 한다는
조금은 강박적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추구가 우선인 기업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점.
현재의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이 남 탓이 아니라 본인의 기질과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는 점.
이러한 고통이 간단하고 단순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점.
이런 면을 보면 님이 얼핏보면 비관적인 성향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점에서는 님이 아픔 속에서 성장해 가고 익어가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보다 조금 여유있게 풀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기보다 살다가 보면 재미있어지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느긋하게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춤 상태인 요즘, 고요한 멈춤 속에서
내면으로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상담원 거울